삼성 경영 시계, 다시 ‘안갯속’

변윤재 / 기사승인 : 2020-09-01 17: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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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이재용 부회장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 11명 불구속 기소
수사심의위 권고에도 보강 수사…검찰 개혁 대신 체면 택한 검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진행 중…“잃어버린 10년 될라” 위기감 고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산경투데이=변윤재 기자] 삼성의 경영 시계가 다시 제로가 됐다.

 

검찰이 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한 것이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 이후 2달여 간 장고했던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소 명분 쌓았던검찰, 수사심의위 권고 뒤집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배임 등 혐의로 기소됐다. 삼성그룹 옛 미래전략실 최지성·장충기 전 실장, 김종중 전 전략팀장, 삼성물산 최치훈·김신 전 대표, 이영호 전 최고재무책임자,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0명도 함께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회계 변경에 이르는 과정이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삼성그룹이 프로젝트G’라는 승계계획을 마련하고, 미래전략실 주도로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을 통한 시세 조종 등 그룹 차원의 불법행위도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 측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일축해왔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변경 모두 적법하게 진행됐으며 시세조종처럼 인위적인 기업 가치 조작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 부회장도 검찰 소환 조사에서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사실 검찰의 기소 강행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의지를 드러내왔다. 2018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 고발장이 접수되면서 시작된 수사는 지난해 9월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으로 확대됐다. 올 들어 최지성 전 실장과 김종중 전 전략팀장, 최치훈 삼성물산 전 대표 등 전·현직 삼성 고위 임원들을 불러 조사한 데 이어 이 부회장도 두 차례 조사했다.

 

이 부회장은 이후 외부 전문가로부터 수사 타당성을 판단받고 싶다며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이에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며 강경 대응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수사심의위에서도 103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내렸음에도 검찰은 기소 의지를 꺾지 않았다. 수사심의위의 권고 이후 회계와 경영학,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 등을 불러 사실상의 보강수사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일방적으로 날짜를 통보하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전문가들을 압박해 논란을 빚었다.

 

장기간 이어지는 사법리스크경영 공백 불가피

 

검찰은 19개월여간 강도 높은 수사를 벌여왔다. 압수수색만 50여차례 이뤄졌고, 삼성 전·현직 임직원을 대상으로 소환조사도 430여차례 진행됐다. 이 부회장도 2번 소환 조사에 응했다. 서버와 컴퓨터(PC) 등에서 2270만건(23.7TB) 상당의 광범위한 디지털 자료를 압수, 분석하기도 했다. 이같은 검찰 수사로 인해 삼성 내부에선 출장 잡기도 어렵다는 하소연이 나올 정도였다.

 

고강도 수사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법원과 수사심의위에 수사의 정당성이나 기소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수사심의위는 기소권 남용을 막고 수사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검찰이 스스로 도입한 제도다. 검찰은 개혁 의지를 보여주고자 8번의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랐다. 그러나 검찰은 이 부회장 건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수사심의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검찰이 입맛대로 수사심의위 권고를 취사 선택하면서, 체면치레를 위해 검찰 개혁마저 걷어찼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특검 관련 재판이 아직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다시 이 부회장이 기소되면서 삼성의 경영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부회장이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은 201611월 이후 삼성은 5년 가까이 사법리스크에 붙잡혀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이 부회장은 검찰 소환조사만 10번을 받았고 구속영장실질심사도 3번이나 받았다. 특검 기소에 따른 재판은역시 무려 80차례였다. 이 가운데 이 부회장이 직접 출석한 재판은 1심에서만 53차례를 포함해 총 70여차례다. 당시 신속한 재판을 위해 집중심리를 진행했지만 첫 공판준비기일부터 선고까지 170일이 걸렸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재판에도 최소 3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전망이다. 더욱이 검찰이 구속영장실질심사 때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만 400권으로 20만 쪽에 달한다. 방어권 차원에서 재판을 준비하고 출석할 것을 고려하면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어렵다.

 

일상적 경영도 어려워재계 온당치 않다

 

삼성 안팎에서는 잃어버린 10이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총수의 공백이라는 최악은 면했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에서 석방된 지 25개월 만에 경영 보다 재판을 우선시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삼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미중 무역분쟁, 한일 갈등 지속,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과 같은 도전에 직면해있다. 더욱이 가술경쟁이 날로 첨예해지는 가운데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삼성의 경영 환경을 더욱 가파르게 만들고 있다.

 

특히 삼성의 주력사업인 반도체 시장에서의 경쟁은 치열하다. 시스템반도체의 경우, 세계 파운드리 (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점유율 1위인 대만 TSMC2나노미터(10억분의1m) 반도체 공정 개발과 생산을 공식화했다. TSMC의 견제로 인해 두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다시 벌어지는 모습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3분기 TSMC(53.9%)의 점유율은 삼성전자(17.4%)3배에 달할 전망이다.

 

메모리반도체 역시 중국의 추격이 가파르다.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최근 상하이 증시 상장을 통해 약 9조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중국 정부도 자국 반도체 업체에 10년간 법인세 면제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며 반도체 굴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 반도체 설계업체인 엔디비아는 반도체 설계회사 ARM 인수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 현장경영을 더욱 강화하며 반도체와 스마트폰, 생활가전, 자동차용 전장 등 삼성의 핵심 사업을 직접 챙겼다.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공들였다. 그는 180조원을 투입해 AI(인공지능)와 전장, 5G(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 등 4대 미래 성장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빍힌 뒤 계획을 착실히 진행 중이다.

 

AI의 경우, 201711월 삼성전자의 연구조직인 삼성리서치를 출범시킨 이후 한국과 미국, 영국 등 7개 지역에 AI센터를 운영하며 관련 연구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세바스찬 승(승현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을 영입하기도 했다. AI 분야 세계적 석학인 승 소장이 삼성행을 택한 배경에는 이 부회장의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2028년에나 상용화될 6G(6세대 이동통신) 백서를 발간하며 기술 선점에 나선 것은 물론, 이 부회장이 두 차례 정의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과 만나 차세대 친환경차와 UAM(도심항공 모빌리티), 로보틱스(robotics)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전장사업의 미래를 구상했다.

 

신사업을 구상하고 조 단위의 과감한 투자를 결정할 이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의 손실이 될 수 밖에 없다. 30조원에 육박하는 평택캠퍼스 투자 이후 2016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이후 멈췄던 대규모 인수합병(M&A)의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지만, 이 또한 무기한 보류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와 같은 돌발상황에서 국내 투자를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한 의사결정도 쉽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마스크 대란이나 일본의 수출규제 때에서 보듯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최소 5년 이상 불확실성에 시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인사는 검찰의 확보한 문건은 오너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업무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는데도 기소를 강행한 것은 결국 자신들이 심혈을 쏟아서 만든 작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일 뿐이라며 수년 간의 수사로 기업인을 잡아두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기업 경영을 흔드는 건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산경투데이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ankyung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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